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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로 가는 길 > - 티베트 여행2. 2024.4.

히말라야로 가자 2025. 2. 11. 08:22

라싸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네팔에서,칭장 열차로 북경에서부터,우리처럼 쓰촨성 청두에서 비행기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바로 티베트에서 다양한 사연들로 떠나게 된 티베트 난민들과 그들을 이끄는 티베트 지도층,그리고 중국에 입국 금지된 사람들일 것이다.지금도 수많은 티베트인들은 네팔,부탄,인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며 고국을 그리워하고  있으나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나도 아주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곳인데,단 7박8일의 여정으로 라싸에서 히말라야 북쪽의 EBC까지 매일 먼 거리를 서쪽으로 향해서 도로 주변의 티베트 풍경만 바라보며 지나갔다.
내가 보았던 몇몇 군데의 티베트 지역엔 동티베트가 온전히 빠져 있고,서북쪽의 아리 지역도 빠져 있었다.
그저 라싸의 유명한 궁전과 사원들,암드록초,간체의 백거사,시가체에서는 잠만 잤고,타쉬룬포 사원을 지나가며 차창밖으로 보았을 뿐이요,시가체에서 7시간 여를 달려 히말라야 연봉을 보러간 여정이 전부였다.
청두에서 하룻밤을 공항근처 호텔에서 자고 4월5일 아침 비행기로 2시간 반만에 라싸에 도착했는데,
날아가던 하늘 아래로 언젠가부터 동쪽 히말라야 연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봉우리들은 인도아 대륙이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하면서 인도 순상지가 아래로 들어가며 티베트 고원이 높이 솟아 올라서 형성되었다는데, 다양한 설산들이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은 채 깊이 눈으로 쌓인 채  이어져 있었다. 그 풍경들은 라싸가 가까워질수록 눈은 점차로
사라지고 나무가 없는 맨몸의 산들로 바뀌어서 높은 고도의 뾰족한 봉우리들이 연이어 있고,그 아래로는 긴 강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높은 고원으로 된 티베트에는 지나가며 보이는 산들이나 벌판들이 기이한 모습이 많아서 지질학의 보고로 보이는 것이었다. 또한 요즘 온갖 지하자원의 보고로 새롭게 조명되는 티베트의 자연은 아직 중국 정부에서 채굴을 허용하지 않아 그 무궁무진한 자원의 종류나 양을 가늠하기 어렵다는데,언듯 보아도 검은 쇳덩어리로 산 전체가 빛나는 곳도 있었다.
라싸로 내려가는 하늘가에는 낯선 풍경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고,그곳에서도 우리 조선족 가이드들이 있어서 어김없이 환영 인사를 해주느라 흰 하라를 우리들 일행 17명의 목에 하나씩 걸어주었다.
고마웠다.고도가 높아서 공항에서 버스로 걸어가는 길도 숨이 차고 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공가 공항에서 라싸로 들어가는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엔 초록빛의 백양나무들이 얄룽창포 강가의 양쪽으로 펼쳐 있었고,농부들은  보리를 심느라 밭을 갈기도 하고  이미 싹이 나오는 밭도 보였다.
바위산으로 된 곳에는 흰 페인트로 사다리가 곳곳에 그려져 있는데,티베트의 사람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죽어서 관세음보살과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올라가라는 뜻도 있고 관세음보살이 그 사다리로 내려와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해주길 염원하는 마음도 있단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네 가지의 장례 풍습이 있는데,달라이 라마처럼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미이라로 만들어 조캉사원 등에 영묘로 모시고,귀족이나 승려들은 화장을,보통의 사람들은 독수리에게 바치는 천장 혹은 조장을 하며,죄를 지은 이들은 강물에 수장을 해서 환생을 못하게 한단다.매장을 하는 경우도 있단다.
나라마다의 환경이나 문화적 관습에 의해 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장례식 문화를 발전시켜왔나보다.
우리 관점으로는 천장(풍장) 풍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라싸에 도착해서 오후에 조캉 사원과 바코르 광장,
세라사원을 둘러 보았다.조캉 사원은 모든 티베트인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성지 중의 하나로,그곳에는 역대 티베트의 위대한 달라이 라마나 송첸감포 등의 왕들을 모신  영묘도 있고,부처나 관세음보살 등의 상들과 인도에서 불교를 가져온 파드마 삼바바 등 다양한 인물들의 조각상들,
혹은 영묘를 모신 곳이다.
사원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그 사원에 
도달하기 위해 바코르광장에  오체투지를 하며  오는 사람들도  있다.
함께 여행하게 된 희선 언니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조캉사원과 다음날의 포탈라 궁전에서 느꼈다고 한다.
온통 금으로 장식된 영묘나 부처,관세음보살상들은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데,그 사원 밖으로 나가면 허름한 옷차림으로 먼 거리에서부터 기도를 하며 성지순례길을 걸어온 평범한 티베트인들의 햇빛에 탄 검은 얼굴들과,지친 모습들을 보게 된다. 비록 우리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극히 일부만의 티베트인들을 바라볼 뿐이지만 그 몇몇 순례자들의 먼지낀 옷차림과,절을 드리느라 이마에 굳은 살이 밴 모습은 묘한 애처로움을 유발해서 그토록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들이 도달해 찾는 신의 모습은 정말로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화답해 주는 지 묻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반발심이 나도 모르게 솟구친다. 중국인들이 늘 선전 전략으로 쓰는 방법이 어느덧 내게도 스며들은 탓인가? 상위 몇 퍼센트의 승려들과 귀족들이 누세에 걸쳐 티베트의 대부분의 토지를 차지하고 농노로 살아온 티베트인들에게 종교라는 명분으로 고통을 감내하게 교묘한 지배전략을 쓴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종교가 모든 생활과 가치관과 문화,정치를 지배해서 그동안 티베트
 역사상 자유와 발전을 향해 변화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닐까 자꾸만 회의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쩌면 척박한 환경에서 불심을 버팀목으로 삼아 고통과  힘든 환경을 잘 견뎌온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겉핥기식의 관찰은 보다 깊은 그들의 삶을 제대로 판단하기엔 한계가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조캉 사원에 이어 방문한  세라 사원에서도 경전토론을 하던 젊은 승려들의 모습과 그곳을 방문하던 티베트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사원 안의 또다른 부처들과 보살들,10대 판첸 라마상들의 모습들도 여전히 어두운 면으로 다가왔다.
식민지민들로 억압과 감시의 나날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을 누그러뜨리게 하는 순기능도 있을 것이나,현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직면하기보다 종교나 다른  대상에게 의지하여  회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지나친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세라 사원의 정원에는 아름다운 살구꽃인지 매화꽃인지 피어  있어서 바라보는 눈길을 사로잡는데,그들의 삶은 여전히 바코르 광장의 건물 옥상에서 총을 들고 감시하는 검은 옷차림의 중국군들의 억압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일제 시대 식민지민으로 살아갔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되어 슬프고도 가슴 아픈 첫날을 보내야했다.

청두에서 라싸로 가는 길에 보이는 동쪽 히말라야 연봉들

라싸의 공가공항에서 라싸로 가는 한 시간 여의 길에는 얄룽창포강이 흐른다.

초봄의 라싸 근교의 들판.곡식들이 초록초록 올라오고 있다.

조캉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하는 티베트인들.

바코르 광장에는 먼 거리에서 성지순례차 조캉사원까지 오체투지로 걷는 가족들이 종종 보인다.

바코르 광장의 상점들.

광장 건물 옥상에는 인공기가 펄럭이고 인민군들이 검은 옷을 입고 총을 멘 채 감시하는 것도 가끔 보인다.

조캉사원의 화려한 외관

조캉사원 입구로 들어가는 곳에는 마니차가 길게 이어져 있다.돌릴 때마다 불경을 외는 의미가 있단다.

조캉사원 안에는 순금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부처상,역대 달라이 라마상,보살상들이 곳곳에 많다.티베트인들은 현실의 고통을 내세에서 위로 받으려는 측면이 있다.

조캉사원의 외관.내부는 사진을 못 찍게한다.

세라사원 입구의 봄꽃들

세라사원 대웅전.절 규모가 방대하다.

우리 앞에서 잠시 애교를 떠는 아이.사탕 선물을 듬뿍 줬다.

세라사원에서 토론중인  스님들.